2008년 4월호



 


[e-칼.럼]  

 


공공의 시대에 내가 꿈꾸는 부산
/ 문화관광해설사 류경희


 



산시민에게 바다는 축복이다. 책 한권 들고 나가 눈부신 모래밭에 앉아 하얀 솜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을 인 바다를 보노라면 마음이 온통 파도소리, 구름, 바람으로 가득 차 행복해진다. 친구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찻집 창가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셔도 좋다. 그러나 바다에서 돌아오며 만나는 부산은 나를 우울하게 하며 부산의 바다와 산, 강에 어울리는 새로운 도시를 열망하게 한다.
  부산의 이야기를 전하고 시간의 켜를 보여주는 건축물들과 오래된 거리들, 항구도시인 부산의 색깔과 멋을 지닌 휴식과 낭만이 있는 친수공간들, 빽빽한 숲과 수변이 어우러진 공원,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넓은 보행로와 자전거도로, 편리하고 친환경적인 도시교통체계, 산과 바다를 담은 예술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건물들,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도심의 고층 사무 · 상업 공간, 훌륭하고 특색 있는 대학, 연구소, 어시장, 박물관, 미술관 등이 부산의 힘과 고유한 문화를 보여주는 그런 부산을 난 꿈꾼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공의 시대이다. 신문과 언론엔 중앙과 지자체의 공공디자인 사업 소식과 특별기획물이 연일 보도된다. 소수의 관심과 담론의 주제였던 공공디자인이 이제 전국가적인 화두가 된 것이다. ꡐ도시를 브랜드화ꡑ한다는 거대 사업부터 간판이나 표지판과 같은 환경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새롭게 설계해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경관, 나아가 친환경적인 생태도시로 나아가려는 도시혁신운동이다.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경관공해, 간판공해 등을 더 이상 방치하면 미래도시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경관법이 11월에 시행될 예정이고 정부는 공공디자인 진흥정책으로 지방정부의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각 지자체에선 조례제정과 전담기구설립 등으로 분주한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 흐름은 우리나라가 삶의 질을 생각할 만큼 문화적으로 성숙했고 또 그것을 뒷받침할 재정 기반이 허락한다는 것이어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지자체마다 경쟁하듯 발표하는 사업계획들이 조금 성급한 느낌이 든다.
  부산시는 "부산의 공공디자인, 도시경관 등에 디자인 전문성 확보를 위해 '부산디자인위원회'를 구성하는 안을 확정, 본격적인 준비에 나선다"고 밝혔다. 선진국과 우리 타도시의 사례를 참고하되 해양도시의 특성을 잘 살린 부산만의 주체적이고 고유한 모형을 기대해 본다. 전문성 확보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만 주민참여와 소통경로를 두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점 때문에 많은 관주도 사업이 실패한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경관·디자인정책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기 위한 시민토론의 자리도 많이 마련하고 시민사회운동도 절실히 필요하다.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는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힘이 된다. 또한 어떤 사업이든 일회적인 성과로 끝내지 말고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광복로 사업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 어떠한 후속대책으로 사업성과를 유지할 지 궁금해진다.

  해운대는 부산시민의 휴식처로 국민의 피서지로 소중한 자원이다. 또한 별다른 산업이 없는 부산으로선 문화, 관광, 컨벤션 산업과 연관되는 경제적 가치를 따져도 더없이 소중한 곳이다. 그런 해운대 정면 바다 경관이 바뀌었다. 새로 올라간 고층 아파트 단지가 천혜의 오륙도 주변 풍치를 훼손한 것이다. 부산시는 도시건축 경관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3년 ꡐ부산다운건축 마스터플랜ꡑ을 수립, 부산 도시건축의 미래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부산이 어느 곳 보다 지켜냈어야 될, 부산을 상징하는 오륙도 경관을 지키지 못했다. 북항 재개발이라는 엄청난 사업을 일으키면서 다른 한 쪽에선 이렇게 시대를 역행하는 반환경적인 건축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부산이 해야 할 일은 현재 가진 소중한 것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다.  
  달리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큰 예산을 잡아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전에 그동안 무신경했던 부분들을 먼저 점검하면 좋겠다. 건물외부에 무질서하게 놓여진 집기들과 쓰레기통, 보행로를 점유하는 입간판이나 몇 년 동안 건물에 방치되는 현수막 등만 우선 정비해도 거리 경관이 달라질 것이다. 화려한 야간경관도 매력적인 도시인상을 만들 수 있지만 심하면 도시가 온통 분장한 듯한 경박한 인상을 준다. 유원지 개발이 아닌 바르고 성실한 도시운영으로 시민이 안주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경관개선을 위해 건물외관과 간판을 조화롭게 바꾸고 가로등을 바꾸고 고급스런 보도석을 깔거나 나무를 베어내 다시 반듯하고 세련된 조경을 할 수도 있지만, 오래된 나무 한그루가 걷고 싶은 거리를 위해 더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무 한그루 때문에 찾아가는 도시나 거리도 있다.
  도시의 매력은 문화 · 역사성을 지닌 이야기가 쌓일 때 생겨난다. 그래서 부산은 역사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중구에 방치되어 있는 몇 남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작업도 그 일환으로 너무 늦어져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울의 안국, 삼청동은 서구적인 강남권과 획일화된 인사동에 비해 한국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은 멋스러운 거리의 대안으로 얘기된다. 그 곳의 간판문화는 나름의 특색을 보여주는데, 목재나 철재 간판에 상호들이 세련되게 도안되고 분위기 있는 외관조경이 더해져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소수의 간판을 제외하면 간판문화에 있어 자생적임에도 혁명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간판의 상호만 보면 도저히 국적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영어나 한자가 주 언어인 양 느껴지는 간판이 너무 많다. 간판 제작인들이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한글 도안이 유럽에선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민족과 국가 정체성과 연결되고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사회는 저력 있는 문화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런 까닭으로도 이번 도시혁신운동과 관련해서 쓰는 많은 영어 표현을 언론과 관료들부터 우리말로 쉽고 아름답게 쓰려고 노력해야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병적인 여러 현상은 산업화와 의식 없는 도시 난개발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그 바탕에는 철저한 이기주의와 물질 중심의 가치 속에 내 것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생각, 공공의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 사회를 또한 이토록 병들게 한다. 디자인 이전에 공공의 이익과 발전이 개인을 더욱 발전하고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공공정신개혁운동이 같이 있어야 한다. 공공정신과 공중도덕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치고,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일깨우는  운동이 필요하다.
  명품도시건설을 내세우며 무분별한 덧칠과 채색으로 도시의 기억을 지우기보다 역사를 기록하는 도시, 한그루의 나무라도 더 심고 가꿔 자연을 회복하는 일에 열심인 도시가 될 때  부산은 진정한 품격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도시공공디자인 운동이 본질적인 혁신운동이 아니고 실적 위주의 보여주기 위한 운동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hr3207@hananet.net

위 글은 제가 ‘문화도시부산(2007,11)’에 컬럼으로 실었던 것입니다. '부산시 도시디자인 조례안'도 제정되어 시행에 들어가는 이 때에 도시공공디자인에 관한 생각을 회원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 다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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