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기.획.연.재]  

 


 현충일과 범어사 / 문화관광해설사 손수호
     

 



어사에 4월이 오면 기념행사가 하나 열린다. 범어사의 대표적 고승高僧 동산東山스님(1890~1965)이 열반하신 제일祭日(음3월23일)이 그것이다. 용성스님의 제자이며 성철스님의 은사이신 동산스님은 단양 태생으로 속성이 하씨이고 법명이 혜일, 동산은 법호法號이다. 주시경 선생이 보통학교 담임이셨고 중동中東학교를 거쳐 총독부 경성의학전문학교(1946년서울의대로통합)에서 수학하셨다.
독립선언 33인 민족대표인 용성스님으로부터 “몸의 병은 의술로 고친다지만 마음의 병은 무엇으로 고치겠느냐”는 말씀을 듣고 충격과 감동을 받아 24세 때 범어사에서 불문에 들었으며 엄격한 수도자적 자세로 한결같이 보살행을 실천하셨다. 일제 왜색 불교의 영향으로 해방 후 “1만 3천여 스님 대부분이 왜색, 대처승이고 이중 6%인 고작 800명 정도가 청정 비구승”이던 혼탁한 승단僧團의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다. 1954년부터 세 번이나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고 1956년에는 세계 불교도 대회에 참석, 한국 선풍을 세계에 알리는 공헌도 하였다. 종정사임 후 범어사로 돌아와 수계법회를 주관하시며 참선 정진을 계속하시다 입적하시니 금어선원 뒤편 대밭 속에  전통양식의 팔각원당 형 부도를 세워 무량광대한 덕을 기리고 있다.

  동산스님의 자취가 불이문과 대웅전 주련柱聯에도 남아 있다. 불이문不二門 주련은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나오는 글귀를 쓰셨는데 “신광불매만고휘유 神光不眛萬古輝猷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 거룩한 빛은 어둡지 않아 만고에 빛나느니, 이 깨달음의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세상의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진리란 원과 같이 둥글며 서로 연결되고 통하여 둘이 아니니 속세의 알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대웅전 주련은 판각으로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本來非皀白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 크고 크신 법왕(진리)이여, 짧지도 않고 또한 길지도 않음이로다. 본래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지만, 곳에 따라 청, 황으로 나타나도다.”라는 금강경오가해의 서序에 나오는 송나라 야보冶父스님의 송頌 첫 구절을 쓰시고 제자 무진장스님이 각刻을 하셨다.

  동산스님에 관한 유명한 일화로 “대통령, 모자를 벗으시오”란 것이 있다. 6.25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전국 전몰군경 합동위령제를 유엔군 사령관과 외교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범어사에서 정부 주관으로 거행할 때의 일이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께서 트레이드-마크인 중절모를 쓰신 체 곧바로 대웅전으로 가시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일행에게 무언가 설명하시던 모습을 보시고는 “대통령, 모자를 벗으시오” 라고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모자와 손가락질 등 여러 무례에 즉석에서 모자를 벗어 정중히 사과하신 대통령께서는 후일 “평생 동안 내게 큰 호통을 치신 두 분이 계셨는데 백범과 동산이다”라고 하셨다. 1953년 1월에는 미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공군장교로 아버지를 따라 한국전에 참전 중 실종되어 장군의 부인이 미국에서 급히 달려오게 되고 아무리 수색하여도 찾을 수 없게 되자 밴 장군 내외가 소망하는 것은 아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명복을 비는 일이었다. 이 위령제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의 집전으로 봉행되었다.
당시 정부 주관 전몰군경 합동위령제는 오늘날 현충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1956년에 제정된 현충일은 예부터 망종 절기에 제사하는 풍습이 있어 이해 망종일인 6월 6일을 기념일로 하였으며 추모대상은 전몰군경이었으나 1991년부터는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으로 개념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의상조사의 창건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라 문무왕 때 불력佛力으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신앙적 기원으로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서산대사가 활동한 승병의 사령부 역할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만세 운동에 사용된 태극기의 대부분이 이곳 암자에서 만들어 졌고 범어사3.1운동과 불교 항일 운동의 전초 기지였다. 6.25동란 중에는 현충의 현장이었으며  근, 현대 우리 고유의 전통 사찰 회복 운동의 중심지였다.  범어사가 호국사찰의 전형典型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어찌 이 뿐이겠는가.

  지금도 계명암 닭 바위는 지네 모양의 대마도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응시하고 있고 창건 당시 주불主佛이었다는 미륵불은 통일신라의 돌 좌대 위에 일본을 등지고 미륵전의 측면에 좌정하고 계신다. 건국 60주년이 되는 올해 범어사 해설에는 호국護國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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